No 자본, No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1)

바닥에서의 시작.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창업을 마치며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려 한다.

 

총 3개의 게시글을 작성할 것이고, 창업을 하며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지만 큼직큼직한 일들을 위주로 사진과 함께 포스팅할 예정이다. 

 

2020년 4월, 창업에 대한 막연한 꿈이 커지면서 세종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땐 Notion 보다는 OneNote 를 기록용으로 사용했었다. 어떤 팀이든 그렇겠지만 팀원을 구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섭외를 했던 인물은 당시에 같이 살고 있던 CPA를 준비하는 형이었다. 창업 아이디어는 없고 돈도 없는데 일단 같이 해보자 제안했다가 그 자리에서 창업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를 두 시간 동안이나 듣고 있어야 했다.

 

맞다. 제목에도 썼던 것 처럼, 나는 당시에 창업 아이디어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단순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건방지고 무모했다. 

 

같이 하려 하는 사람이 없어 결국 못하게 되는 건가 싶던 차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학번 위의 정연 누나가 코로나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파리에서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리에서 복귀한 누나도 마침 할 일이 별로 없다기에 냉큼 창업대회를 같이 나가자고 꼬드겼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답과 함께 Ok를 받고 둘이서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준비했다. 준비과정에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뭘 하든지 디자이너가 없으면 예쁘지 않으니 봐주지 않을 것 같았다. 만 하루가 되지 않아 지인을 통해 디자이너 몽구를 섭외했다. 몽구도 창업에 관심이 있었고 재밌을 것 같단다. 정말 최고의 기분이었다. 재밌을 것 같다! 라는 나와 같은 생각만으로 이렇게 모여서 시간을 쓰려한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아래 보이는 것 처럼 거의 매일 회의를 했고, 그중에 가장 괜찮았던 '혼술족을 위한 칵테일 키트 배송 서비스' 를 최종 아이디어로 대회에 나갔다. 

 

 

당시의 사업 계획서는 정말이지 개판이었다. 줄 글로 설명된 사업 아이디어와 시장분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선에 합격했던 것은 그런 것들을 멘토링 해주려는 창업지원단의 대회 개최 목적 때문이었던 걸로 생각한다. 아이디어 단계의 아이템은 하자가 많았다. 특히 술을 다루는 사업이기 때문에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정말 아주 외울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 국세청과 세무서에 하루에도 전화를 열 통씩은 했었다. 배달은 안되지만 스마트오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해결책을 얻어냈다.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그 당시에 내가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알만 한 사람을 찾거나 공무원들을 괴롭혀 답을 얻어내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계획서는 발전하였고 가장 큰 소득은 서울에서 가장 큰 주류 납품 회사의 대표님과 안면을 트고 도움을 받았던 일이다. 사실상 끝날 때까지 도움을 받은 거래처였다.

 

어찌 됐건 그렇게 창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뒤에서 1등을 했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연누나(개발자)와 몽구는 흥미를 잃은 듯했고, 당시 몽구(디자이너)는 마지막 대회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기로 했다. 주목받지 못한 아이디어와 없는 돈에 팀원을 잡고 있을 힘은 없었고 그렇게 몽구는 헬로콕에서 나가게 되었다. 

 

떠난 팀원을 다시 데려오다. 

우리는  세종대학교 창업지원단의 가장 큰 대회와 예비창업패키지를 동시에 준비했다. 둘이서 매일매일 세종대학교 투썸플레이스에서 사업계획서를 쓰고 멘토링받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사업계획서 작성에 투자했던 것 같다. 엉성하던 사업계획서가 시간과 노력 , 멘토링을 거치니 꽤 그럴싸한 사업계획서로 변했다. 그렇게 공 들인 사업계획서로 우리는 세종대학교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비대면으로 발표하고 시상식도 비대면으로 하는 비대면 일정이 진행되었다

공들인 대회를 마무리하고 철원에 여행가던 중 우리는 1등 소식을 들었고, 나는 정말이지 몽구를 떠나보내기 싫었다. 대학교 내부 대회 치고는 상금이 꽤나 됐는데 딱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을만한 금액이었다. 

 

몽구는 예정대로 마지막 대회를 마무리하고 팀을 나가게 되었고, 나는 정연누나와 예비창업패키지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헬로콕의 칵테일키트는 꼭 필요한 소비가 아니라 기분 좋게 마음을 쓸 때 소비되는 제품이었다. 소비자의 예쁜 것을 갖고 싶은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들을 우리가 대변할 수 있어야 했다. 컴퓨터공학과 출신 두 명으로는 표현해내기 어려웠고 헬로콕의 페르소나와 로고 , 디자인을 처음부터 만들어 낸 몽구가 아니라면 그 어떤 사람도 이걸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대회 상금으로 뒤풀이를 하자는 명목으로 몽구를 꼬셔 '뱃놈'으로 몽구를 데려갔다. '예비창업패키지 선정되면 무려 월급도 줄 수 있고, 디자이너로써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다. ' 등의 연설을 펼치며 몽구를 설득했다. 정연누나와 나, 그리고 몽구는 적당히 취기가 올라 다들 상기되어 있었고 다시 하자고 말해줘서 고맙다는 몽구의 대답에 다시 우리는 헬로콕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지만 적당히 더웠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제대로 된 시작과 새로운 팀원 영입 

지금까지 글에서는 팀원이 총 세 명으로 표현되었는데 ' 몽구가 나간 시점 ~ 몽구가 들어 온 시점 ' 에서 나는 팀원 한 명을 더 섭외했다. 당시 내게 부족했던 점은 스타트업에서의 경험 부족과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부족함이 있었다. 예비창업패키지에 합격한다면 빠르게 정부과제를 수행해야 했기에 그 부족한 부분을 메꿔 기획을 맡아 줄 친구 한 명을 섭외했다.

장후는 이미 창업을 했던 경험이 있고, 몰두할 수 있고, 섬세했다. 농락과 멸시 등의 갖은 수모를 겪어가며 그를 팀으로 데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부들거린다 ) 첫 대회에서는 뒤에서 1등을 했지만 , 두 달 뒤 우리 팀 네 명은 제대로 된 1등을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 창업을 한다는 소문을 내며 예비창업패키지에 최종 선정되었다.

이후에 발전된 사업 계획서로 세종대학교 내부에서는 상을 받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상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특별한 것은 캠퍼스타운 지원 사업에도 선정이 되어 사무실을 일 년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노션에 수상내역을 기록해둔 곳.

네 명이 사무공간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음에도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회의를 하러 시끄러운 투썸플레이스를 가지 않아도 되니.... 그게 최고였다.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된 기쁨과 함께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때문에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다. 

 

가장 먼저 추진했던 일은 시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바로 한남동 와인앤모어로 뛰어갔다. 도매고 소매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돈을 들고 술을 내놔라는 막돼먹은 심보로 미니어처를 쓸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참 좋았다. 미니어처들이 잔뜩 있으니.

원래부터 주류가게 단골이던 우리 팀원들은 물 만난 고기들처럼 잔뜩 들떠있었다. 우리는 그다음 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고 너무나 기분이 좋아 이게 일인지 놀이인지 헷갈리는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프로토 타입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칵테일'부터 제대로 알 필요가 있었다. 다 같이 조주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며 주 1회 칵테일 세미나를 하면서 칵테일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비싼 칵테일은 뭐가 다를까 싶어 한 잔에 삼만 원씩 하는 칵테일도 마시러 다녔다. 그 결과 다른 사무실 직원들로부터 일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험담을 듣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 마디 했다. 

 

" 이게 일이에요. "

 

정말 재미있고 짜릿하지만 이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라는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이게 스타트업의 매력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헬로콕이 처음으로 다 함께 맛 봤던 칵테일 '블루하와이'이다.

한참 지나고 우리는 이 사진을 보면서 참 좋았던 시절이다~ 라며 깔깔댔다. 그렇다. 낭만은 딱 여기까지이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에게 벌어졌던 골치 아픈 '일'과 팀 내부 갈등에 관해 적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