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자본, No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2) : Done is better than perfect

 

2022.12.14 - [Exp] - No 자본, No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1)

No 자본, No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트업(1)

헬로콕은 예비창업패키지 선정 이후 여러가지 지원사업에 추가로 선정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 캠퍼스타운 <세종대>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매번 회의나 작업을 온라인이나 세종대학교 투썸플레이스에서 했던 우리에게 일 할 공간이 생긴것은 정말 좋았고, 효율적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팀원들을 물리적으로 묶어두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4평 남짓 작은 공간이었지만 우리는 만족했다. 20년 10월쯤의 사무실 입주 날, 나는 꽤 늦은시간까지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으며 잔뜩 긴장되어있던 마음을 그 곳에 적응시키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머리속을 헤집도록 두었다. 

 

세종대학교 쪽문에 있던 캠퍼스타운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입주하고 팀원들은 각자 역할에 맞게 천천히 '일을 시작하기 위한 일' 을 시작하고 있었고 나는 그 당시 2주 정도는 아무것도 못하고 사대보험, 세금, 과제 교육, 멘토링 등에 끌려다녔었다. 이 시기는 시작에 불과했지만 나는 어느정도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꽤 큰 실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헬로콕은 주류를 다루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주류를 취급하기 위해 일반음식점의 면허가 필요했다. 우리는 허울뿐인 일반음식점 면허가 아닌, 헬로콕의 칵테일키트를 소개하고 칵테일 문화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모히또 하우스'를 만들었다. 

타일작업, 벽페인트, 씽크대.... 모히또 하우스는 정말 뼈와 피를 갈아넣은 걸작이다. 진짜 지금 생각해도 힘들다.( 실제로 영업을 했고 꽤나 반응이 좋았다. 무려 데이트팝 광진구 1등.)

 

 

하지만 이 성취감은 허울에서 오는 오만이였다. 사무실과 가게가 생기고 지원금이 생기니 그 사실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완전 별로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은 이런 '창업놀이' 에서 꽤 오래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나는 마냥 창업놀이에 빠져있지는 않았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팀원들은 MVP 제작에 몰두해있었다. 나는 그 다음단계를 준비했다.

 

술 사업에 대한 막연한 조언을 구하러 다니다. 

팀원들이 MVP 에 몰두해 있을 때, 나는 멘토링을 받고 교육을 받았다. 그 와중에 순서를 지키지 않고 했던 일이 하나 있는데, 네트워킹을 위해 일단 큰 회사를 찾아 가 봤다는 것이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주류회사 대표님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거창 한 주제를 가져간게 아니라 그냥 찾아갔다. ' 나는 칵테일 키트를 판다, 미니어처 주류를 사려하는데 어디서 사야 가장 쌀까요 ' 라며 찾아갔는데 대표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꼬! 제품을 가져온것도 아니고 크게 궁금한 것도 없고 그냥 어디서 사야 가장 쌀까를 물어보려 찾아왔다니 참 웃겼을 모양새이다. 

'술이야 다 똑같지 뭐' 한마디 하시고, 바로 조언을 해주셨다. 헬로콕을 하면서 쭉 머리속에 남았던 대표님의 말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연륜이 느껴지는 말이다.

 

"제품을 만든다면 골치가 아프다, 남의 물건 가져다가 팔아도 문제가 생기는데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냐?"

 

맞다. 제품을 만드는건 정말 쉬운일이 아니고 문제가 생길 요소가 아주 많다. 이 시기보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시와 마케팅이라는 책을 쓰신 교수님과 만날 기회가 있어 잠시 대화를 했는데 비슷한 결의 말을 하셨다. 

 

" 너희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니? 유통하는 회사니 ? 스타트업이 그걸 둘 다 할 수 있어 ? "

 

당시에도 공감이 되는 말이긴 했지만 피봇팅을 할 단계가 아니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팀원들을 말리기 싫어 나는 피봇팅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팀원들에게 피봇팅의 개념에 대해 말 해주었던 적이 있는데 이 일을 뒤에 더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Minimum Value Product

Minimum Value Product > Product ? FUCK : GOOD ;

글을 읽고있는 사람들은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려면 가장 먼저 뭘 하겠는가?  

그렇다, 시제품을 만들어야한다. 우리의 생각이 잘 녹아든 제품을 만들고 검증받아야 한다. 아래는 헬로콕의 MVP 블루하와이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 예쁜 제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누구든 사고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는 정말 어이가 없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온다. 

 

저 예쁜 BACARDI 라는 술이 보이는가 ? 합리적인 가격의 맛있는 white rum 이다. 대부분의 맛있고 인기있는 칵테일은 저 rum 이라는 술이 들어간다. 주류도매시장에서 사왔다. MVP 를 만드는거니까 굳이 많이 주문 할 필요 없으니까.

 

MVP 를 제작하고 영업을 위해 저 제품을 여러개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첫번째 프로덕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바카디 럼을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술이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저 귀엽고 예쁜 바카디 화이트럼 50ml 가 없다. 미니어처 외산 술이 수요가 떨어져 바카디 미니어처 주류는 수입이 끊긴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스위스에 있다는 제조사와 유통사는 연락조차 안된다. 무역회사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저 MVP 에 들어가있는 술은 RFID 가 부착되지 않은 술이다.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불법이며 브로커나 여행객들이 어디선가 들여온 루트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제품은 초기에 DANZKA 보드카만 활용 한 칵테일로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듯 정말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은 항상 다가온다. 단지 하나하나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정부과제는 사업에 도움을 주는 도구이며, 그 자체가 일이 되면 안된다.

 

잠깐의 설렘과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어떻게' , ' 잘' 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오롯이 나 혼자의 고민이였고 나는 역할을 분배하고, 일이 생기면 주간'점검' 정도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예비창업패키지 계획대로 주간계획을 만들었고 그대로 수행했다. 그때까지도 예비창업패키지를 완벽하게 완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예비창업패키지에 침체되어있었고 달성지표들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정부과제 달성에 목을 맸다. 나는 이 시점에 '피봇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영업은 잘 되지 않고 있고 돈을 조금 더 벌게 해줄 수 있다는 베네핏은 자영업자들에게 큰 이익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업을 잘 하는 사람을 데려와야 하나 ? 고민 했지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각자만의 그럴듯한 이유들로 열심히 거절한다는것은 영업대상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팀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피봇팅에 대한 말을 꺼냈다.  몽구와 장후 , 정연누나 셋 다 반대했다. 내가 영업을 하며 겪었던 경험과 영업대상에게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피봇팅은 꽤 격하게 반대했고 개인적으로 솔직한 생각을 들었을 때는 각자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예비창업패키지 과제 달성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싫었다.' '개발이 필요 없어진다면 개발자가 왜 있어야하냐.' '기민하게 움직이는 건 좋지만 조금 더 이 아이템으로 노력해볼 수 있는게 아닐까.'

당시 나는 스물두살의 경험이 부족한 대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헬로콕의 일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며 실행되었다. 시간이 걸릴테지만, 모두의 동의를 얻으니 그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모두의 반대로 우리는 피봇팅하지 않고 계속 칵테일 키트 스마트오더 서비스를 진행했다. 나는 가끔 " 이때 피봇팅을 했으면 헬로콕은 마지막에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 생각하곤 한다. 할 만큼 해서 아쉬운 마음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항상 아쉬운것들이 생기는 것 같다. 매력이 떨어진다는것에 공감했다는 것에서 모두가 찜찜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기존의 아이템을 실행했다. 이건 나중에 그대로 감수해야하는 문제가 되었다. 찜찜한 건 그대로 두거나 덮어두고 가는게 아니다. 

 

초기창업멤버의 근무시간 편성에 대한 관점 

누군가는 정답처럼 초기창업멤버가 전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조언자들이 전업을 해야한다고 했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고 소통을 해야하는일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헬로콕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쉬는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일주일에 하루는 off 할 수 있도록 했다. 팀원들모두 열정적이기에 일주일에 하루쉬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팀원 네명 중 두명이 낮시간동안 다른 회사에서 일을하다 왔고 밤에 와서 네시간-다섯시간정도 일을 했다. 우리는 소통을 해야하는일이 잦았고 모히또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기획,개발,디자인 은 더욱 그랬다. 슬랙을 활용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했지만, 서로는 서로가 없는 시간대에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의사결정을 위해 낮에 일하는 사람은 밤에 일하는 사람을 기다렸다 퇴근하는 경우가 생겼다. '문제 없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이다. 의사결정이 늦어진다는것도 큰 문제지만 낮에 일하는 사람이 밤에 일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생각이나 예상과는 완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팀원들을 불러모아 다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시간에 일하는 둘 다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적당한 이유들로 계속 다른 회사를 다니며 저녁에 일을 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나는 당시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막무가내로 하던 것들을 다 때려치고 이 일을 하라고 한다면 그만둔다 한 들 막을 수 없을것이라 생각했고 그대로 둔다면 서로간 갈등과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그대로 지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로 '슬랙에 좀 더 잘 응답하자, 응답이 없다면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정신을 발휘하자 '  정도로 마무리하고 맛난 밥을 먹으러갔다. 

 

며칠 뒤, 밤시간에 일하는 동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다주러 갔다 처음으로 팀원에게 화를 냈다. 둘이서 열심히 회의중이기에 아이스크림만 놓고 가려고 했는데 회의내용을 잠시 듣고가고 싶어져 옆에 살짝 앉아서 회의내용을 들었다. 클릭 역할을 하는 배너에 넣을 문구를 A가 좋을지 B가 좋을지를 한시간 째 토의하고 있었던것이다. 가슴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매번 이런식으로 일을 했던것이냐며 화를 내고 제발 그냥 하자 라며 나와버렸다. 우리는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를 그 당시 잘 실천하지 못했다. 

 

이런 갈등이 있었을 때 나는 초기창업자는 무조건 전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생이지만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니 가능했던 발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초기창업자라고 해서 전업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창업은 위험성을 갖고 있으니 언제든 돌아갈 길을 마련해둬야 한다. 창업자가 진심이라면 창업기업이 본업보다 덩치가 커지고 그때 전업을 할지 말지 고민해도 늦지 않다. 

 

 

쓰다보니 너무 써야할것들이 많아 이정도만 작성하도록 하겠다. 혹시 더 궁금하다면 댓글로 남겨주기 바란다. 다음편은 창업을 마무리하며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쓰고 , 추억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사소한 웃음거리들.

1. 사진 보던 중 발견 한 밤 늦게 사무실에서 몽구에게 불러준 '인연'

   장후 : 방구석 1열에 앉혀줬으니 고마워해라

   몽구 : 진짜 싫어.

 

2. 끝장나게 눈이 많이 오던 날 다같이 눈사람 만들기

지나가던 꼬마도 거들더라.